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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의 골린이 일기

그날, 정말 다시 만났다

G-log 연주 2025. 7. 23. 11:13

📝 연주의 골린이 일기

“다시 마주한 순간, 흔들리지 않기 위해”

 

📅 흐림, 천둥 예보 / 약간은 눅눅하고, 이상하게 설레는 날


🎬 티타임 전, 이상한 예감

오늘따라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골프 장갑이 손에 맞지 않는 느낌.
새로 산 그립은 익숙하지 않았고,
내 안의 루틴도 어딘가 ‘어색하게 정돈된’ 기분이었다.

“연주야, 오늘은 무슨 날 같아.”
미연이 가볍게 말했지만
그 말 속엔 묘한 울림이 있었다.

📲 (보검오빠 메시지 도착)

📩 보검오빠: "연주야 민준이랑 나 먼저 도착했어. 룸 4번이야 :)"

 

심장이 ‘툭’ 하고 울렸다.
그 짧은 알림음이,
지난번 그 스윙 소리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 룸 4번, 다시 그 스윙 소리

비 내리는 창 너머로 스크린 골프장이 보이고, 골프채와 공이 조용히 놓인 장면. 다시 만난 날의 긴장과 감정이 흐르는 공간을 표현한 이미지.

 

문을 여는 순간,
공기 안에 섞여 있는 남자들의 티샷 소리.
그 특유의 저음 톤 타구음은
내 귀가 먼저 알아보았다.

“슉—탁!”
“오케이, 220m. 잘 붙었네.”

민준이 먼저 돌아봤다.
“오~ 연주 왔어? 미연이도 안녕!”
그리고
조금 늦게 고개를 든, 보검 오빠.

“...왔구나.”
그 말이 전부였지만
그 안엔
‘나도 기억하고 있어’라는 느낌이 가득했다.


💬 스크린 앞, 4인 1조의 기묘한 시작

미연이:
“보검 오빠, 연주가 요즘 드라이버 연습 엄청 해요. 160m 나가요 이제~”
나:
“야야야야… 아니야, 그냥... 실수도 아직 많고...”
보검:
(웃으며) “음… 실수는 늘 자연스러운 거야. 문제는 그다음이지.”
민준:
“형, 또 철학 모드야?”

나는 살짝 웃었지만
그 말이 스윙 전에 자꾸 떠올랐다.

실수는 괜찮아.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가 연습장 벤치에서 혼잣말처럼 되뇌던 김프로님의 말과,
묘하게 겹쳤다.


🏌️‍♀️ 1번 홀: 리듬이 깨질 뻔한 순간

첫 티샷.
내 손은 괜찮았다.
근데… 심장이 너무 앞서갔다.

“탁…”
공은 페이스 중앙을 살짝 비껴맞았고,
오른쪽 벽을 살짝 때리고 굴러갔다.

미연: “괜찮아~ 원래 1번은 몸 푸는 거잖아.”
보검: (조용히) “지금 릴리스 빠르지 않았어?”
나: “어… 맞아. 손목이 먼저 풀렸어.”

보검은 내게 손목을 가볍게 털어보이며 말했다.
“지금은 팔보다 등으로 풀어줘야 해.
지금 너, ‘보내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앞서 있더라.”

그 말이 꽂혔다.
그가 공을 때리는 게 아니라 흐름 속에 놓는다고 말했던 그 순간처럼.


🎯 7번 홀, 나도 모르게 피니시를 잡았다

중간쯤, 7번 홀.
아이언을 잡고 백스윙을 시작했는데
내 몸이 갑자기
**'딱 3초 전에 김프로님이 말했다면 어땠을까'**를 떠올렸다.

그 순간,
스윙이 내가 휘두르는 게 아니라
몸이 정리되는 흐름 속에 흘러간 느낌이었다.

공은 말없이 떠서, 그린 바로 앞에 딱 멈췄다.

보검: (조용히 박수)
“지금… 그건 네 공이 아니라
네가 만든 순간이었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피니시 자세만 더 오래 유지했다.
처음으로 **누구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피니시를 지키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 18번 홀, 그리고 갑작스러운 천둥

마지막 퍼팅을 마치자마자,
밖에서 ‘우르릉’ 묵직한 천둥이 울렸다.
잠시 뒤, 갑자기 창문 밖으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말없이 클럽을 내려놓고,
조용히 스크린 기기에서 빠져나왔다.

민준이 헛기침하듯 툭 내뱉었다.
“이거… 하늘이 전집 가라고 시그널 준 거 아니냐?”

미연이 바로 응수했다.
“맞아. 이건 전에 소주각이다. 소주각.”

보검 오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처에 종로빈대떡 본점 있어요.
전에 갔었는데… 거기 고추장찌개가 예술이에요.
같이 갈래요?”

나는 우산을 쓰며 작게 웃었다.
“전은… 비 오는 날을 위해 태어난 음식이잖아요.”


🌧️ 모둠전, 고추장찌개, 그리고 안주 삼은 이야기들

그 전집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비에 젖은 우리 셔츠는 아직 마르지도 않았는데
기름 냄새와 고추기름 향이
먼저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테이블에는 금방 모둠전 한 판이 올라왔다.
깻잎전, 동그랑땡, 고추전, 김치전, 버섯전…
그리고 한쪽엔 빨갛게 끓고 있는 고추장찌개가 부글부글.
양파와 고추가 송송 썰어져 있어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미연이 젓가락으로 깻잎전을 집으며 말했다.
“이게 진짜 골프보다 잘 맞는다.”
(다들 웃음)

민준이 찌개를 휘휘 저으며 보검에게 물었다.
“야, 근데 넌 연주 바로 기억 났냐? 오랜만이잖아.”

보검 오빠는 찌개에 밥을 비비다가
내 쪽을 슬쩍 보며 말했다.

 

“당연히. 예전에 골목에서 매일 뛰어놀았잖아.
그땐 그냥 동네꼬마였는데…지금은 어여쁜(얼버무리듯 들리는)....
지금은 티샷보다 피니시가 더 기억에 남는 사람이더라.”

 

 

순간 나는 젓가락을 놓을 뻔했다.
미연은 물을 마시며 씨익 웃고,
나는 괜히 물컵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찌개는 더 진해졌고,
전은 젓가락 사이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게 완벽했다.


🌿 오늘의 정리 – 감정 아닌 감각으로 남은 날

오늘은 기술을 뽐낸 날은 아니었다.
스코어가 좋지도 않았고,
내 스윙이 완벽한 날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하루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누군가와 주고받은 짧은 눈빛,
내 손끝에 남아있던 그날의 피니시 감각,
티샷 전 숨을 고르던 호흡의 무게,
그리고
빗소리 속에 퍼지던 전 부치는 소리,
고추장찌개의 매콤한 향기,
말없이 웃던 그 사람의 말투.

스코어가 아닌 온도로 남는 하루,
기술이 아닌 온기와 감각으로 채워진 골프.
아마도, 진짜 ‘골프가 삶이 되는 순간’은
이런 날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감정이 너무 올라왔어

내일은 이 감정이 습관이 되기 전에 다시 정리하려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