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둘째 날, 프로가 내 손목을 붙잡고 한 말
두 번째 레슨 날 아침, 내 마음속은 꽤 복잡했다.
몸이 아픈 것도, 일정이 빠듯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겁이 났다.
첫 레슨 때 내가 얼마나 어설펐는지, 프로님이 얼마나 지쳐 보였는지 생생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민폐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고, 연습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첫날보다 느렸다.
그래도 안 가면 더 후회할 것 같았다.
그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마음이 나를 다시 그 문 앞에 세웠다.
연습장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타구음이 들려왔다.
이번엔 어제보다 훨씬 덜 낯설었다.
어색하긴 해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레슨 존에 도착했을 때, 김프로님은 이미 다른 연습생과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나는 조용히 기다리며 내 스윙을 다시 복기해봤다.
“어깨는 열지 말고, 손목은 부드럽게…”
입으로는 반복했지만 몸은 여전히 긴장 상태였다.
오늘도 나는 똑같이 실수할까 봐, 아직도 두려웠다.
프로님이 내 쪽으로 다가오자 나는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말했다.
“네, 오늘은 손목을 좀 볼 거예요.”
손목?
그 한마디가 마음에 깊게 박혔다.
나는 내 스윙에서 ‘손목’이 문제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늘 어깨, 체중 이동, 백스윙 궤도에만 신경 썼지
손목은 ‘그냥 잡는 도구’쯤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김프로님은 처음부터 내 손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손목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요.
이 상태로 스윙하면 공이 맞더라도 방향성이 안 생기고, 몸도 쉽게 지쳐요.”
그는 내 손목을 살짝 잡았다.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
클럽을 잡은 내 오른손을 살며시 돌려보이더니,
왼손을 따라 자연스럽게 회전시켰다.
“자, 이게 지금 연주 씨 손목이에요. 딱딱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건, 클럽이 도는 걸 방해해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클럽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는 거예요.
근데 이 손목은 지금, 클럽을 ‘막고’ 있어요.”
그 말이 뇌리에 박혔다.
나는 지금껏 공을 ‘때리는 것’만 생각했지,
클럽이 ‘흐르도록’ 둔 적은 없었다.
다시 처음처럼
그는 내 양손을 감싸며 말했다.
“이건 힘으로 잡는 게 아니라, 컨트롤하는 감각이에요.
살짝만 쥐세요. 너무 꽉 잡으면 공도 긴장해요.”
공도 긴장한다는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말엔 뼈가 있었다.
지금껏 내 스윙은 너무 억지스러웠고,
클럽은 내 의지대로 휘둘러지는 도구가 아니라
항상 버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손목을 풀자, 어깨가 따라 풀렸다.
어깨가 풀리자, 허리가 돌아갔다.
몸이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내 움직임을 지켜봤다.
한 번은 클럽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예 내 뒤에서 스윙 궤도를 그려주었다.
그 느낌이 참 이상했다.
누군가 내 몸의 궤도를 ‘그려준다’는 게 이렇게 안정감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손목 하나 바꿨을 뿐인데
스윙이 바뀌었다.
눈에 띄게.
공의 타구음이 달라졌다.
이전엔 ‘텁’ 하는 무거운 소리였다면,
지금은 ‘탁’ 하고 가볍게 튕겼다.
정확히 맞은 것도 아닌데 손에 전달되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공은 이전처럼 날아가지 않았지만,
방향성만큼은 꽤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오늘은 방향이 좋아요.
비거리는 나중에 따라와요.
우선 클럽이 흐르기 시작했으니까, 그걸 기억하세요.”
김프로님의 이 말이 오늘 레슨의 핵심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말을 곱씹으며, 클럽을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윙.
이번엔 공이 벽에 맞고 반사되지 않았다.
정면을 향해 ‘훅’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비거리는 짧았지만,
그 감각은 강렬했다.
김프로님의 마지막 한마디
레슨이 끝날 무렵, 그는 내게 말했다.
“오늘 손목만 바꿨는데도 이렇게 달라지죠?
앞으로 골프는 그런 거예요.
아주 작은 변화가, 아주 큰 감각을 바꾸는 운동.”
그 말은 마치 인생 조언처럼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내 스윙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골프는 힘이 아니라 흐름이고,
통제가 아니라 여유였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오늘은 정말 소중한 하루였다.
레슨이 끝났지만, 나는 연습장을 바로 떠나지 못했다.
김프로님이 떠난 자리에서 잠시 더 남아 몇 번의 스윙을 조심스럽게 반복해봤다.
방금 전까지 내 손목을 직접 잡고 교정해준 그 느낌을 잊고 싶지 않았다.
공은 여전히 완벽하게 맞지 않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내가 지금은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이 스윙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혼자 남아 연습할 때는 늘 불안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덜 무서웠다.
방향이 틀어져도, 거리가 짧아도 괜찮았다.
손목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내 마음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 몰랐다.
집으로 가는 길, 무심코 손목을 쓸어내렸다.
연습장에서 느꼈던 김프로님의 손의 온기와 그 짧은 교정 동작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주고 있다는 건, 때로 기술보다 더 큰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지켜봐줌’은 내가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도 바꾸게 한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골프를 계속하게 될 이유는 단순한 실력 향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는 재미 때문이라는 걸.
오늘의 깨달음:
“손목에 들어간 힘만 빼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나는 그동안 공을 맞히는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공이 맞는 이유’를 느꼈다.
스윙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손목을 잡고 “흐르도록 하라”고 말해준
김프로님의 한마디는,
나에게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레슨 둘째 날,
나는 공보다 내 ‘손목’을 바라봤고,
그 손목을 통해 내 ‘마음의 긴장’을 느꼈다.
골프는 참 이상하다.
스포츠인데, 마치 명상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