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벌써 두번째야
두 번째 연습장에 가는 길, 나는 꽤 들떠 있었다. 긴장보단 설렘이 컸고, 어제보다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조금 있었다. 첫날엔 공이 뒤로 튀고, 클럽으로 바닥을 내리치고, 심지어 내 신발에 공이 튀어 올라 맞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다시 가고 싶었다. 실패 속에서도 무언가 배웠다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이 다시 나를 이끌었다.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연습장에 들어섰다. 낯설었던 풍경이 오늘은 조금 익숙하게 느껴졌다. 평일 저녁, 여전히 연습장 안은 조용하지만 묘하게 활기찼다. 각자의 자세로 스윙을 연습하는 사람들, 웅크린 채 퍼팅 자세를 연습하는 사람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아직은 모든 게 서툴렀지만, ‘연습장에 오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했다. 조금은 어설픈 자신감으로 자리를 잡고, 타석에 섰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당당하게 클럽을 꺼냈고, 스트레칭도 그럴듯하게 해봤다. 그 순간, 연습장 직원 한 분이 나를 힐끔 보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오셨네요. 어제보다 자세가 좀 더 단단해 보이세요.”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은… 어제보단 잘 맞아야죠.” 첫 번째 공을 놓고 스탠스를 잡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스윙을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을 갈랐다. 공은 가만히 있었고, 내 클럽만이 붕 뜬 허공을 지나갔다.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 공을 놓았다. 두 번째 시도, 이번엔 클럽이 공을 스치듯 지나갔고, 세 번째는 너무 빨리 휘둘러 공이 옆으로 휘어져 나갔다. 그렇게 이어진 10여 개의 스윙. 단 한 번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왜 이러지…?”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제보다 자세를 정리했고, 연습 영상도 찾아봤는데 왜 결과는 제자리일까. 공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정면으로 날아가기는커녕 제자리에 멈춰있거나, 스윙과 상관없이 옆 타석 방향으로 굴러갔다. 어떤 공은 스크린에 정통으로 박히고 튀었고, 한 번은 내 발등에 공이 맞고 튕겨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는 점점 위축됐다. 옆 타석에서는 어떤 여성분이 완벽한 궤도로 공을 날리고 있었고, 그 타구음은 마치 프로처럼 경쾌했다. 나는 점점 작아졌다. 스윙을 할 때마다 실수하는 내 모습에, 내 안에서 뭔가 무너지고 있었다. ‘난 왜 이걸 시작했을까’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날 보고 있었구나ㅎ 초린이니까 괜찮아
그때였다. 조용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아까 인사했던 직원이 내 타석 근처에 서 있었다. “고객님, 혹시 괜찮으세요?” 나는 당황해서 얼른 대답했다. “네? 아, 네 괜찮아요… 저 아직 진짜 초보라서요.” 직원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좀 많이 튀시길래요. 혹시 손목 다치신 건 아닌가 걱정돼서요. 정타가 안 나올 땐 손에 무리가 많이 가거든요.” 나는 순간,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다 보고 있었구나.’ 민망했지만, 그 말투에는 놀랍도록 따뜻한 배려가 있었다. 눈치 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투. 그 한마디에 오히려 마음이 풀렸다. “혹시 클럽을 꽉 잡고 계신 건 아닐까요?” 그는 이어서 설명했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면 클럽이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해서 오히려 공이 안 맞아요. 가볍게 잡고, 몸 전체가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해보세요.” 나는 무의식중에 클럽을 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정말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팔꿈치와 어깨까지 긴장으로 뻣뻣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천천히 클럽을 내려놨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손에 힘을 빼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마치 요가 호흡을 하듯, ‘힘을 뺀다’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클럽을 잡았을 때,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이전보다 손목이 유연해졌고,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 상태로 다시 공을 놓고 스윙을 했다. ‘탁.’ 작지만, 나에게는 놀라운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내 클럽이 공을 제대로 때린 느낌이었다. 공은 크게 날아가지 않았지만, 정면으로 곧게 뻗었다. 나는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 순간, 마치 골프가 나를 받아들여준 것 같았다. 직원은 다시 내 타석을 지나며 작게 웃었다. “방금 공, 괜찮았어요. 확실히 힘이 빠지셨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의 의미였다. 나를 민망하게 만들 줄 알았던 순간이, 오히려 골프를 더 사랑하게 만든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 나는 ‘잘 치는 연습’이 아니라 ‘느끼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스코어나 거리보다, 내 몸과 클럽의 움직임을 느끼고, 공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연주야 넌잘 칠 수있어!
연주의 마음
나는 연습장을 나서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가방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훨씬 가벼웠다. 어제는 몸이 고되고 어깨가 뻐근했지만,
오늘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배운 기분이었다. 그건 스윙의 각도나 공의 방향 같은 게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힘을 어떻게 내려놓는지를 배운 하루였다.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카운터 쪽에 있던 그 직원이 다시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시 한번 작게 고개를 끄덕여줬고, 나는 그 고개 끄덕임에, 괜히 눈물이 날 뻔했다. 말 한 마디보다 더 따뜻한, ‘오늘도 잘하셨습니다’ 같은 인사였다. 연습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전보다 조금 더 단단했다. 나는 아직 잘 치지 못한다. 스윙은 흔들리고, 공은 정면으로 나갈 때보다 엉뚱한 데로 굴러갈 때가 훨씬 많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분명히 전보다 나아졌다. 단 한 개의 공이라도 제대로 맞았던 그 감각은, 내 안에 아주 깊이 남았다. 앞으로도 수많은 날이 오겠지만, 아마 나는 이 ‘두 번째 날’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이날 내가 얻은 건 스윙 감각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꼈다. 나는 이제 알았다. 골프는 단순히 잘 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장 오래,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걸. 그리고 그 시작은 늘, 공이 맞지 않는 그 어색한 순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걸.
오늘의 깨달음: “처음부터 잘하려고 힘을 주는 것보다, 처음이라서 느끼는 과정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 골프는 정적인 공을 치는 운동이지만, 그 안에 가장 많은 움직임이 존재한다. 내 마음의 움직임, 손끝의 긴장, 눈의 초점, 그리고 내 의지와 현실 사이의 거리. 그날 직원의 한마디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첫 번째 위로였다. 그리고 나는 그 위로 덕분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날, 공은 안 맞았지만, 내 마음은 처음으로 골프에 제대로 맞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