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야 도대체 나에게 왜그래
필드도 나가봤고, 스크린 라운딩도 해봤다.
말 그대로, 이제 나는 골프를 ‘경험해 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경험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곧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조여왔다.
🕘 평범한 저녁, 조금 다른 마음으로 연습장에 가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연습장에 향하던 발걸음은 익숙했다.
하지만 마음은 전과 달랐다.
왜냐하면 요즘 내 드라이버 샷이 ‘갑자기’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어제도, 그제도 드라이버가 기가 막히게 맞았다.
스윙 소리는 또렷했고, 공은 오른쪽으로 휘지도 않았고, 거리는 170m를 넘었다.
‘이제 나 좀 치는 사람 된 거 아냐?’
그 생각이 떠오를수록 왠지 불안했다.
“혹시, 오늘은 안 맞으면 어쩌지?”
괜한 두려움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았다.
⛳ 드라이버가 ‘잘 맞는다’는 그 이상한 기분
📘 드라이버(Driver)
: 티샷에 사용하는 가장 긴 클럽. 최대 비거리를 내는 클럽으로, 동시에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클럽이기도 하다. 슬라이스(오른쪽으로 휘는 공), 훅(왼쪽으로 감기는 공), 뒷땅(공을 치기 전 땅을 먼저 치는 실수) 등 수많은 미스샷이 드라이버에서 일어난다.
그 어려운 드라이버가, 요즘 들어 맞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잘 맞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불안해졌다.
실력이 늘었다기보단,
운이 좋은 건 아닐까?
이게 진짜 내 실력이라면,
다음에도 이렇게 맞춰야만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 “오늘도 잘 맞아야 한다”는 착각이 만든 긴장
타석에 서자 긴장이 몸으로 올라왔다.
왼손 그립, 오른손 위치, 백스윙 각도, 골반 회전…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는 넘쳐났고, 내 몸은 굳기 시작했다.
첫 샷.
공이 맞았지만, 타구음이 뚝 떨어졌다.
방향은 좋았지만, 거리는 줄었다.
두 번째 샷.
이번엔 방향도 흔들렸다.
‘역시 그렇지. 내가 어제 잘 맞은 건 운이었어.’
내 안에서 자책이 올라왔다.
🧑🏫 그 순간, 프로님이 한마디 던지셨다
“연주님, 요즘 드라이버가 잘 맞죠?”
“…네? 아… 네. 근데 오늘은 좀 흔들려요.”
“그럴 수 있어요. 오히려 지금처럼 ‘맞기 시작한 시점’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어요.”
“위험이요…?”
“네. 거리나 방향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하면,
사람은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욕심을 내요.
그럼 힘이 들어가고, 리듬이 깨지죠.”
그 말에,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 상태가 정확히 그랬다.
‘잘 맞기 시작했으니까, 이제는 계속 잘 맞아야 한다’
그 강박이 나를 조이고 있었던 것이다.
🌀 리듬이 무너질수록, 타구도 흔들린다
프로님의 조언 이후, 나는 클럽을 내려놓고
다시 ‘리듬’부터 생각했다.
백스윙, 탑, 다운스윙, 임팩트, 피니시.
하나하나를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흐름에 집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클럽 헤드가 공을 만나는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딱—’
정확하진 않아도 예쁜 소리가 났다.
몸도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 잘 맞기 시작했을 때, 더 겸손해져야 한다
예전엔 공이 하나만 정타로 맞아도
너무 좋아서 흥분했고,
‘이제 나도 다 배운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런데 요즘은 안다.
**공이 맞기 시작한 그때야말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드라이버가 잘 맞는 게 기쁜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내가 이제 골프를 ‘가볍게’ 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연습을 마치고, 삼겹살집에서의 복기
오늘은 회사 선배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다음 필드 얘기도 있고,
스크린 라운딩 복기도 할 겸 가까운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연주야, 요즘 드라이버 되게 잘 맞는다며?”
“조금… 근데 그게 더 무섭더라고요.”
“왜?”
“이제는 실수하면 다 티 날 것 같아서요.”
선배들은 한참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제 너도 그 마음 드는 거 보니까 ‘진짜’ 골프 시작한 거야.”
삼겹살이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왠지 마음도 함께 익어가는 것 같았다.
🥃 한 잔의 소주, 그리고 속마음
“연주야, 스코어 신경 쓰지 말고
이번엔 필드에서 리듬 하나만 잡고 와.”
“그게 더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실력이야.
숫자보다 몸의 리듬을 믿는 거.”
그 말은, 마치 오늘 내가 겪었던
모든 감정을 정리해주는 한 문장이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타수는 안 셌지만, 만약 쟀다면 110타 정도 나왔을까?’
예전 같았으면
기뻐했을 테지만,
오늘은 왠지 그보다 내가 흔들리지 않은 것이 더 기뻤다.
💭 오늘의 깨달음
“골프는 잘 맞는 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 맞지 않는 날에도 무너지지 않는 내가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드라이버를 잘 맞히는 것보다,
마음이 흔들릴 때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중심’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 당신에게도 묻고 싶은 말
혹시 당신도
공이 잘 맞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더 불안해졌던 경험이 있나요?
완벽한 샷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원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렇다면 아마,
당신도 지금…
제대로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그건,
정말 잘하고 있는 거예요.
🔚 마무리
드라이버가 잘 맞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골프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내 마음도 더 자주 흔들리겠지만
그때마다 오늘 이 글을 다시 읽고 싶다.
“지금도 괜찮아. 나는 잘 가고 있어.”
이 문장 하나가
다음 필드에서도 나를 지켜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