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작은 어땠어? 나는 이렇게 시작했거든
🏌️♀️ 처음 골프라는 운동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뜻밖에도 선후배 모임 자리였다. 삼겹살 불판 위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그 밤, 지연 선배가 고기를 뒤집으시며 툭 한마디 던지셨다. “요즘 골프 모르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 단순한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뇌리에 남았다. 옆 테이블의 선배님과 후배들, 그리고 갓 졸업해서 취직한 신입사원까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필드 경험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누구는 지난주에 90타를 깼다고 하고, 누구는 필드에서 3 퍼트를 줄이기 위해 어떤 그립을 바꿨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기를 뒤집었지만, 속으로는 묘한 소외감이 들었다. ‘나만 이 얘기를 못 끼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내가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서 걸어가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골프라는 운동은 나와 거리가 먼, 텔레비전 속 중년 남성들의 취미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달라졌다. 갑자기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의 연기가 배어든 고기 냄새보다 더 선명하게, 선배님의 그 한마디가 남았다. 그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골프 입문'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적었다. “골프 잘 치는 법”, “골린이 준비물”, “실내 연습장 추천”, “중고 클럽 괜찮을까?” 단순한 검색이었지만, 어느새 머릿속에는 내가 어떤 클럽을 사야 할지, 어떤 연습장을 가야 할지 계획이 자연스럽게 세워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골프 세계는 넓고 깊었고, 초보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그렇게 점점 골프라는 세계에 한 발씩 들어가고 있었지만, 첫 번째 현실적인 장벽이 곧 나타났다. 바로 장비였다.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었다. 드라이버 하나에 40만 원, 아이언 풀세트는 백만 원이 넘는 게 기본이었다. 여기에 퍼터, 우드, 하프백까지… ‘입문’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비용은 높았다. 장비를 하나하나 찾아보다가 결국 브라우저를 닫고, 한숨을 쉬었던 날이 많았다. “운동 하나 시작하는 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지?” ‘중고라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광고마다 붙은 말들, “초보자용 최적”, “스틸샤프트 추천”, “SR 플렉스”, “경량 샤프트”, “여성용 중고 아이언” 등… 너무 많은 정보와 생소한 용어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심지어 판매자 중엔 클럽을 과대포장하거나, 상태를 솔직히 밝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건 그냥 새 거 사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통장 잔고를 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검색 기록만 길어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세주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다.
오 나의 구세주!
점심시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지연선배와 골프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선배가 커피를 마시곤 말했다. “야, 너 진짜 골프 쳐볼 생각 있으면 말해. 아끼는 우리 연주가 친다면 내가 쓰던 골프채 주고 새로 하나 사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진짜요? 그거... 제가 써도 돼요?” 내 입에서는 자동으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선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고, 나는 속으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그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중고 장비 검색을 3일간 멈추게 할 정도로 위로였다. 며칠 뒤, 선배가 챙겨 온 골프채 세트를 받아 들었다. 첫인상은 생각보다 굉장했다. 검색을 많이 했어서 그런지 딱 보기에도 관리가 잘된 그립과 헤드에는 수많은 스크래치가 가득했지만 무언가 포스가 느껴졌다. 그리고 가방은 나를 위해 당근으로?? 하나거래해서 가지고 오셨다. 보통이었다면 흥분상태를 감추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와만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감동했다. 그건 단순한 중고 클럽이 아니었다. 선배에게는 소중하게 함께해 온 시간이 담긴 클럽, 그리고 내게는 골프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 같은 존재였다. 그 순간부터 그 골프채는 내 것이었다. 게다가 브랜드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내 열정을 담기에 충분한 도구였다. 그리고 그 클럽 덕분에 나는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골퍼가 될 수 있는 첫 문을 연 기분이었다. 며칠 후, 나는 용기를 내어 집 근처 실내 연습장을 예약했다.
처음 가보는 연습장 그리고 긴장과 떨림
생전 처음 가보는 골프 연습장. 무거운 골프백을 어깨에 메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연습장 안은 조용했지만, 긴장감이 감돌았다. ‘탁’ ‘텁’ 하는 묵직한 타구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스윙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트랙맨이라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모니터에는 숫자들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한쪽 타석에 자리를 잡고, 골프채를 꺼냈다. 손에 쥔 그립은 낯설고, 무게감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가볍게 스윙 연습을 해봤지만,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윽고 첫 스윙. 공은 맞지 않았고, 클럽이 허공을 갈랐다. 두 번째는 클럽이 땅을 세게 내리쳤다. 세 번째는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고, 네 번째는 공이 튀어 올라 내 신발을 때렸다. 옆 타석의 사람이 살짝 쳐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클럽을 다시 들었다. “괜찮아, 누구나 처음은 이런 거야.” 한 시간쯤 지나자, 공이 드물게 정면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맞는 느낌이 손에 조금씩 전달됐고, 허리 회전이 익숙해지면서 자세도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신기하게 즐거웠다. 내 몸이 점점 리듬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좋았다. 지금 당장은 형편없지만, 이 순간은 분명히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어디든 상관없다고 느꼈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의 깨달음: “비싼 장비보다, 내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든 작은 용기가 더 중요하다.” 첫 골프채가 신상은 아니어도 너무너무 괜찮았다. 스윙이 형편없어도 또 가고싶을뿐이다. 나는 지금 내가 직접 선택한 길 위에 서 있다. 누구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뜨겁게 배울 것이다. 언젠가 나만의 장비를 갖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내 첫 골프채가 내게 안겨준 ‘시작의 의미’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줘!